본문 바로가기
소소한 축구

세계 최고의 이탈리아 축구 리그 '세리에 A'

by Ki-o 2022. 9. 30.
반응형

김민재 선수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나폴리'로 이적했습니다.

축구 리그 중 4대 리그에 속하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어떤 리그인지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개요>
세리에 A(이탈리아어: Serie A 세리에 아)는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리그 중 최상위 프로 리그이며, 스폰서십으로 세리에 A TIM이 공식 명칭입니다.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 세리에 A에서 주관합니다.

FIGC 공인 하에 1898년 대회가 첫 대회로 인정되었고, 현재의 전국 단일 조로 구성된 리그 방식은 1929년부터 시행했습니다. 가장 많이 우승한 구단은 36번을 우승한 유벤투스이며, 인테르는 리그 구성이 단일 조로 개편된 이래로 강등의 역사가 없는 모든 시즌에 참가한 구단입니다.

세리에 A의 UEFA 계수 순위는 유럽 클럽 대항전 진출권 수를 결정짓는데, 20~21시즌 후, UEFA 계수에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의 라리가 다음입니다. 2020년 세리에 A는 IFFHS에서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세계 리그 순위에서 1위에 선정됐습니다.

<구성 및 규정>
1929-30시즌은 세리에 A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이전까지는 아마추어 리그였으며, 지역단위의 조로 구성된 리그를 전국 단일 조로 통합한 리그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순위와 대진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보다 공평한 방법인 리그전으로 순위를 정하게 됐습니다. 리그의 구단 수 구성을 16개 혹은 18개 사이에서 바뀌고 바뀌는 과정들은 있었지만 이를 제외한 다른 규정의 개정은 없었으며, 참가 구단 수는 04-05 시즌부터 20개 구단으로 확장되기에 이릅니다. 승점에 관해서는 승리를 거둘 시 3점이 부여되며(94-95 시즌 전까지는 2점이었다), 무승부에는 1점, 패배에는 승점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최종 순위 결정 시 동일 승점의 다수 구단이 있는 경우 다음의 순위 결정 기준이 적용된다. 적용 순서대로 상대 전적 승점, 상대 전적 득실 차, 종합 골 득실 차, 종합 득점 수, 제비 순입니다. 과거 2005년 이전까지는 플레이오프 경기를 별도로 가지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38 라운드까지 종료된 후 1위 구단은 스쿠데토와 더불어 이탈리아 챔피언 타이틀을 얻게 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받습니다. 리그 2~4위 구단들은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진출 자격을 부여받고, 리그 5위 구단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 구단은 UEFA 유로파 리그 조별리그 진출 자격을 받으며, 6위 구단은 UEFA 유로파콘퍼런스 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받습니다. 만약 코파 이탈리아 우승 구단이 리그 순위 5위권 이내에 있다면, 5, 6위 구단이 유로파 리그로, 7위 구단이 유로파콘퍼런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게 됩니다. 리그 하위 3개 구단은 세리에 B로 강등되며, 세리에 B에서 승격하는 구단들로 빈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트로피 및 상징물>
우승 구단은 그다음 시즌 동안 자기 유니폼에 그 전 시즌 우승을 상징하는 스쿠데토를 붙일 수 있는데, 스쿠데토는 이탈리아 삼색기가 그려진 방패 모양의 배지이며, 1924-25시즌에 그 전 시즌에 우승한 제노아가 처음으로 착용했습니다. 1960-61 시즌부터 우승 구단은 공식 세리에 A 트로피인 코파 캄피오니 이탈리아 우승 트로피도 함께 수여받습니다.

1958년, 움베르토 아녤리의 아이디어로 이탈리아 최상위 축구 리그에서 10번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룬 구단에게 특별한 별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황금색의 오각별 모양의 배지는 유니폼에 부착되는데, 보통 구단 로고와 함께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유벤투스가 1957-58 시즌으로 10번째 스쿠데토의 업적을 이룩하며 이 황금별을 가져갔는데, 이로써 유벤투스는 세계 최초로 우승 기념 배지가 부착된 유니폼을 입는 구단이 됐습니다. 50년대에 유벤투스가 황금별을 가져간 이후로 60년대에는 인테르가, 70년대에는 밀란이 10번째 우승을 거두며 황금별을 가져갔습니다.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축구계에 있어 유일하게 20, 30번의 세리에 A 우승으로 2개 이상의 별을 부착한 구단입니다.

(세리에 A에서 황금별을 받은 구단 순위)
유벤투스 (1957-58, 1981-82, 2013-14)
인테르나치오날레 (1965-66)
밀란 (1978-79)

<역사>
1898년에 시작된 세리에 A는 약 20년 동안 아마추어 구단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대중의 관심이 낮았으며, 해당 기간 동안 첫 번째 이탈리아 챔피언이 된 제노아와 프로 베르첼리가 대부분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탈리아 축구 연맹(FIGC)은 리그 원년인 1898년에 조직되어 리그를 주최 및 주관했습니다. 1921년 축구 리그 개혁을 주장한 비토리오 포초가 새로운 리그를 만들자는 '포초 계획'을 세워, '포초 계획' 측과 FIGC 간의 협정이 불발되며 이탈리아에 2개의 리그가 공존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신생 리그의 1921-22 시즌은 이탈리아 축구 동맹(CCI)이 주관하여 세리에 A 역사상 유일하게 FIGC가 주관하지 않은 시즌이 됐습니다. 이듬해 '콜롬보 타협'을 통해 FIGC가 '포초 계획'을 수용하며 재결합에 성공하게 됩니다.

1920년대 말까지 이탈리아 축구 리그는 리그전으로 진행되는 여러 개의 지역단위 조와 각 조의 승자들이 참가하는 토너먼트의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1929-30시즌부터 '세리에 A'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지역단위 조의 구성을 폐지하고 통합된 단일 리그전의 구성으로 개편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1930년대의 시작은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도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크나큰 분기점이 됐습니다. 최다 우승 구단 유벤투스, 국제 대회 트로피 수집가 밀란, 강등의 역사가 없는 인테르 구단을 부르는 소위 '트레 그란디'(빅 3)의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많은 팬이 생겨났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사이클링을 대신하여 명실공히 축구를 이탈리아 인기 스포츠로 만들었습니다.

전간기와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시기에만 밀라노-토리노(밀란, 인테르와 유벤투스)라는 이탈리아 축구의 패권은 볼로냐와 또 다른 토리노 구단인 토리노에 의해 심심치 않게 무너졌습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볼로냐, 토리노와 더불어 피오렌티나, 라치오, 로마, 나폴리가 간헐적으로 스쿠데토를 들어 올리긴 했으나, 연패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로마는 1941-42 시즌에 최초로 북부지방에 쏠려있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고 우승을 거둔 최초의 중남부 구단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더 드문 위업을 남긴 구단으로는 카살레, 노베세(상기된 FIGC와 CCI의 분열로 강팀 및 인기 구단들이 CCI로 유출된 FIGC 1921-22 시즌에서 거둔 우승)가 20세기 전반에, 후반에는 칼리아리, 베로나, 삼프도리아가 있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열린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조별 예선 탈락 후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는 해외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전면 금지합니다] 1981-82 시즌에 이르러 이탈리아 축구의 순위가 역대 최하인 12위까지 떨어지고 벨기에, 소련, 동독, 체코슬로바키아와 같은 제2등급 리그로 분류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위의 금지법은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합니다.

역설적으로 세리에 A는 첨단 기술이 접목된 훈련 시스템과 외국인 선수 시장 재개방으로 리그 수준이 질적으로 향상되어, 1980, 90년대에 명성에서나 업적에서도 최고를 찍게 됩니다. 당시 세리에 A 팀은 유럽 클럽 대항전에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남겼습니다. 특히나 1989-90 시즌에는 이탈리아 축구 구단이 3개의 주요 UEFA 클럽 대항전을 모두 석권하는 역사적인 대업을 이룬 때였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리그는 수년 동안 UEFA 계수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 세리에 A는 여전히 유럽 주요 리그로 남아있지만 미궁 속에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배팅, 팬 및 관중의 감소와 구단의 불안정한 재정 상태, 기술적 부분의 저하 등이 이유로 꼽힙니다.

반응형

댓글